애플 스토어의 기틀을 닦은 론 존슨은 AI가 쇼핑의 편의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고관여 제품 구매 시 인간의 물리적 경험과 직관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그의 경고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본질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실리콘밸리가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며 '에이전트 커머스(Agentic Commerce)'라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구글의 유니버설 커머스 프로토콜이나 챗GPT의 쇼핑 기능은 AI가 인간을 대신해 제품을 탐색하고 결제까지 완료하는 미래를 그린다. 그러나 애플 스토어의 초기 모델을 설계하며 리테일의 역사를 쓴 론 존슨(Ron Johnson)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단호한 회의론을 제기한다. 그는 2,000달러짜리 노트북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고관여 소비 행위를 AI 에이전트에게 온전히 일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1].
존슨의 관점은 단순한 기술 거부감이 아니다. 그가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구축했던 매장 전략의 핵심은 제품을 단순히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제품의 무게를 느끼고 디스플레이를 확인하며, 전문가와 대화하며 사용법을 익히는 물리적 경험의 장을 만드는 데 있었다 [1]. 그는 AI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지를 좁혀주는 훌륭한 보조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직관이 필요한 최종 결정의 순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1].
애플 스토어가 경쟁사들의 모방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비밀 소스(Secret Sauce)'는 바로 사람이었다 [1]. 존슨은 애플 스토어의 직원들이 판매 실적에 따른 커미션을 받지 않도록 설계함으로써, 고객에게 압박을 가하는 대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주는 컨설팅 환경을 조성했다 [1]. 이는 2000년 입사 이후 그가 10년 동안 325개의 매장을 구축하며 애플의 수익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꾼 원동력이었다 [2].
하지만 그의 경력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J.C. 페니(J.C. Penney)의 CEO로 취임했을 때, 그는 애플에서 성공했던 '스타트업식 혁신'을 전통적인 백화점 체인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실패를 맛보았다 [1, 3]. 할인 행사를 폐지하고 매장 구성을 급격히 변경한 그의 전략은 기존 고객층을 이탈시켰고, 결국 16개월 만에 해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4]. 이후 설립한 리테일 스타트업 '엔조이 테크놀로지(Enjoy Technology)' 역시 2022년 파산을 맞이하며, 기술과 리테일의 결합이 얼마나 정교한 접근을 요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3].
존슨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AI가 쇼핑 경험을 개선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AI가 '쇼핑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1]. 여기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AI 에이전트의 판단력이 인간의 취향과 물리적 만족도를 어디까지 모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의 기술적 낙관론이 실제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혹은 기업들이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소비자의 경험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론 존슨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적 만족과 전문가와의 상호작용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을 것인가? AI가 쇼핑의 '과정'을 효율화할 수는 있어도, 구매라는 '행위'가 가진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본질까지 점유할 수 있을지, 우리는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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